2010년 1월 22일 금요일

Interview_ 인천신문 ( i-Today news)












1월 14일 부평역 스타벅스 _
기사 내용 :

소통 이상의 교감으로 ‘한국-필리핀’ 합작큐레이터 한명- 젊은작가 10명 ‘프로젝트 2010 리플렉션’

“작품만 오가는 일회성 교류가 아닌 작가들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다양한 미술 문화를 접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한국, 필리핀 젊은 작가들이 지난해 9월 25일부터 ‘프로젝트 2010 리플렉션’을 진행중이다.
이전부터 곳곳에서 진행된 해외교류전시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서로 다른 문화체험을 통한 문화 이해의 폭을 넓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넓혀가고자 마련된 이번 사업은 1명의 큐레이터와 1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박소연 큐레이터 기획 아래 2005년 국립고양미술스튜디오 입주 당시 이번 일의 아이디어를 낸 채진숙씨가 디렉터를 맡기로 했다. 고병성, 권자연, 이소영, 이주연, 한준희 작가를 비롯한 필리핀의 레슬리 데 차베스, 마이클 알빈 아드라오, 카를로 가부코, 크리스토퍼 자모라씨 등은 두 사람의 지휘에 맞춰 활동할 작가들이다.
이들은 15일에서 한 달간 상대 국가를 방문, 매주 화요일마다 지역적 특색을 엿볼 수 있는 곳을 방문해 리서치하고 목요일은 토론회를 열어 작품 완성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를 열기로 했다. 그 이후에는 각자 계획에 따라 작품을 제작, 5월에는 인천에서 7월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먼저 한국 작가들이 지난해 필리핀 작가 4명을 초대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이화동, 창신동, 용산구 해방촌, 인천 차이나타운을 방문했다. 오는 26일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로 떠나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돌아온 뒤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돌입한다.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작가들은 각자 익숙해진 삶의 모습을 타국 작가들에게 보여주고 있지만 이런 활동들을 통해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깨닫고 있어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고병성씨는 “이번 프로젝트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도 하지만 그동안 스쳐지나간 우리만의 새로운 모습을 이방인들의 눈을 통해 발견한다”며 “이번 일은 계속 진행될 수록 점점 작가들을 매료시킨다”고 말했다.이주연 작가도 “반드시 어떤 스튜디오에 들어가 다른 나라에서 온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업하는 것만이 레지던시가 아닌 것 같다”며 “우리의 일상과 이들의 일상을 새롭게 경험하며 작품을 완성해내는 것이야 말로 스튜디오를 벗어난 레지던시”라고 말했다.
최미경기자 mkchoi333@i-today.co.kr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입력: 2010-01-21 18:35:28

Meeting @ aA - Before 2nd Research.... in Manila!









Manila Research:
시기: 2010. 1.26.화~ 2010.2.9. 화
(비행시간) 1. 26(화) 20:25 인천 출발 → 23:25 마닐라 도착
2.9 (화) 14:30 마닐라 출발 → 7:20 인천 도착
참여자: 고병성, 박소연, 이소영, 이주연
머무를 장소: PSP
리서치 목적: 1. 작업에 필요한 필리핀 현지 자료 수집

2. 필리핀 작가들과 구체적인 Co-Work에 대한 협의
리서치 전 참고 자료 :
1. 혁명의 노래 -필리핀 양심수들의 옥중 투쟁기 (베니그노 아키노 외 지음) -도서출판 다리
2. 역사와 문화를 알면 필리핀이 보인다 (조병욱 지음) - 해피&북스
3. 이것이 필리핀이다! (장익진 엮음) - 청조사
4. 에르미따 ( 필리핀의 국민 작가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의 대표 소설) -도서출판 아시아
** 리서치 전까지 개인 작업 및 협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Collaboration
팀구성 : 1. 크리스토퍼 자모라, 권자연, 채진숙 (확정)
2. 마이크 아드라오 & 이소영 (확정)
3. 카를로 가부코 & 한준희 (확정)
4. 카를로 가부코 & 고병성 (미정)
5. 이주연 & 마이크 or 크리스토퍼 (미정)
** 협업 작업 방법 모색
- idea 회의를 통한 작업의 구체적 실현.
Exhibition date : ‘10. 05. 28(금) ~ ‘10. 06. 12(토) : 인천
‘10. 7월 중... - 마닐라(협의 중)
After the Research:
2월 11일(목)14:00 신촌 Toss- 02-392-0117 첫 회의
- 자료 공유 및 작업 방향 설정, 리서치 자료의 도큐멘터리 제작.
2월~3월 - Collaboration 및 개인 작업 진행 - 3월 말일 중간 점검.
4월, 5월 - 작업 진행 , 매달 한번 씩 중간 점검 회의, (신문사 및 잡지, 방송사 홍보 시작)
5월 24일(월)~ 5월 27일(목) : 작품 설치
5월 28일 전시 오픈


2009년 11월 18일 수요일

아듀!해방촌, 베버리힐스 된다!



남산~용산~한강 축 연결강남 대체 주택단지 조성최고 강북주거벨트 재탄생서울의 중심 남산의 남서쪽 구릉지 일대는 ‘해방촌(용산2가동)’이라고 불린다. ‘해방촌’은 이름 그대로 1945년 8ㆍ15 해방 뒤 북쪽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뒤로는 남산이, 앞쪽 너른 터에는 미군기지가 있다.
현재 이곳에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골목골목 사이로 다가구ㆍ다세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스웨터 등을 만드는 가내공장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아직도 수십년 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심 달동네, 그러나 골목마다 즐비하게 늘어선 부동산중개업소는 이곳에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변화의 물결이 일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서울 최고의 요지지만 낙후됐던 해방촌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남산과 미군기지 터에 조성되는 용산민족공원을 연결하는 녹지 축이 생기고,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이른바 ‘한국판 베벌리힐스’로 재탄생하는 꿈이다. 이르면 2016년 이곳은 인근의 한남동 전통 부촌과 한남뉴타운, 이태원동ㆍ갈월동ㆍ후암동의 상업지구와 인접한 최고급 주거벨트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는 이명박 시장 시절, 해방촌을 중심으로 한남동과 후암동 일대를 강남 대체 고급 주거지로 조성하는 내용의 ‘U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어 지난 5월에는 오세훈 시장이 해방촌 일부(5만7000㎡)와 국방부 소유의 군인아파트 부지(4만7000㎡) 등 총 10만4000㎡를 폭 100~190m, 길이 700m 규모의 ‘남산 그린웨이’로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남산과 용산민족공원, 한강을 잇는 녹지 축의 핵심 연결고리이자 향후 용산국제업무단지와 남산르네상스의 중간 지점으로 낙점을 받은 것이다.
60년째 해방촌에 살고 있다는 평북 선천 출신의 김두병(81) 할아버지는 “초기 정착한 실향민 중 일부는 남대문시장 등지에서 돈을 번 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고,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상경한 농촌민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면서 “서울의 몇 안 되는 달동네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서야 제대로 된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주민들 사이에서 개발 이야기가 한창이다”고 전했다.
김 할아버지의 말처럼 해방촌 일대는 최근 ‘육군 중앙경리단 건물이 대형 쇼핑몰 부지로 바뀐다’ ‘용산고교 앞 일대가 상업지구로 용도가 변경된다’ 등의 각종 개발 루머들이 떠돌고 있다. 실향민들의 고단한 삶터였던 해방촌이 달동네에서 ‘해방(?)’돼 강남 뺨치는 ‘최고급 강북’으로의 달콤한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남상욱 기자/kaka@heraldm.co

헤럴드 경제, 11월 17일자

해방촌 이야기

서울의 중심 남산의 남서쪽 구릉지 일대는 ‘해방촌(용산2가동)’이라고 불린다. ‘해방촌’은 글자 그대로 8?15 해방 뒤 생긴 마을이다.뒤로는 남산이 있고, 앞쪽 너른 평지에는 미군기지가 자리잡고있다.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이 곳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이었다. 이런 곳에 1946년께부터 북쪽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자리잡게 되면서 마을이 생겨났다.일제시대 남산 신사(神社)로 올라가는 가파른 ‘180계단’ 위쪽에는 이 곳의 중심부인 해방촌 5거리가 펼쳐져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골목골목 사이에는 다가구ㆍ다세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스웨터 등을 만드는 가내공장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아직도 수십년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곳, 그러나 골목마다 즐비하게 늘어선 부동산중개업소는 이 곳에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변화의 물결이 일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서울 최고의 요지지만 달동네로 남아있던 해방촌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남산과 미군기지 터에 조성되는 용산민족공원을 연결하는 녹지축이 생기고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이 곳은 한국 최고의 주거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름하여 ‘한국판 베버리힐스’. 이르면 2016년 이 곳은 인근의 한남동 전통부촌과 한남뉴타운, 이태원동ㆍ갈월동ㆍ후암동의 상업지구와 인접한 최고급 주거벨트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된다.서울시는 이명박 시장 시절, 해방촌을 중심으로 한남동과 후암동 일대를 강남 대체 고급 주거지로 조성하는 내용의 ‘U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이어 지난 5월에는 오세훈 시장이 해방촌 일부(5만7000㎡)와 국방부 소유의 군인아파트 부지(4만7000㎡) 등 총 10만4000㎡를 폭 100~190m, 길이 700 m 규모의 ‘남산 그린웨이’로 조성한다고 발표했다.고급 주거지역 개발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 것. 남산과 용산민족공원, 한강을 잇는 녹지축의 핵심 연결고리이자 향후 용산국제업무단지와 남산르네상스의 중간지점으로 낙점을 받은 것이다. 그린웨이 조성으로 철거되는 주민들은 후암동ㆍ갈월동 일대의 재개발지역(33만4700㎡)으로 옮겨 살게 된다.60년 째 해방촌에 거주하고 있다는 평북 선천 출신의 김두병 할아버지(81)는 “초기 정착한 실향민중 일부는 남대문시장 등지에서 돈을 벌은 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고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상경한 농촌민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면서 “서울의 몇 안되는 달동네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서야 제대로된 관심을 받고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주민들 사이에서 개발 이야기가 한창이다”고 전했다.김 할아버지의 말처럼 해방촌 일대는 ‘육군 중앙경리단 건물이 대형쇼핑몰 부지로 바뀐다’,‘용산고등학교 앞 일대가 상업지구로 용도가 변경된다’ 등의 각종 개발루머들이 떠돌고있다.실향민의 고단한 삶터였던 해방촌은 이제 해방촌은 달동네에서 ‘해방’되어 강남 뺨치는 ‘고급 강북’으로의 달콤한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Research IV_ Briefing













□ 인천 차이나 타운
○ 일 시 : 2009. 10. 20(화) 12:00~18:00
○ 답사 목적: 주요 항구 도시 인천 - 한국의 옛 외국인 주거지 탐사.
○한 도시안 여러 나라의 공존.
○ 38선 이북 지역에서 이남지역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임시 거처.
○ 개항의 역사가 숨쉬는 곳

□ Incheon _ China Town
○ Time : 2009. 10. 20(Tue) 12:00~18:00
○ The port city of Incheon – Exploring an old city – The first foreign village in Korea
○ Multicultural coexistence
○ A temporary shelter for Koreans who came from North Korea

Research III _ Briefing










□ 해방촌
○ 일 시 : 2009. 10. 13(화) 12:00~18:00
○ 장 소 :해방촌 (이태원, 용산 일대)
○ 답사 목적: 해방과 분단의 역사가 숨쉬는 현장.

○ 해방과 더불어 생겨난 마을
○38선 이북 지역에서 이남 지역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임시 거처
○ 상업화 과정 속에서 상경한 농촌민들의 보금자리

□ Haebang-Chon
○ 일 시 : 2009. 10. 13(Tue) 12:00~18:00
○ A place experienced the pain of separation and the joy of liberation
○ A town established after liberation
○ A place for farmers who had to leave their home or move to city during industrial revolution

세운 상가에 대하여..

1966년 6월 20일 김현옥 전 서울시장은 중구청의 6급 공무원인 이을삼씨가 낸 아이디어를 가지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다. 이날 보고 내용은 종묘 건너편에서 시작해 청계천로, 을지로, 퇴계로를 가로질러 형성된 종로~필동간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이곳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첨단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빈민들이 우후죽순으로 몰려 살았던 이곳은 일제시대 때는 소이탄(불을 질러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폭탄) 투하에 대비해 공터로 남겨 놓았던 소개지였다. 이 계획에 대해 박 대통령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에 고무된 김 시장은 곧 바로 이곳에 살고 있던 수천명의 빈민들을 서울 외곽으로 몰아내고 건축 설계에 들어간다. 여기에 참여했던 건축가는 당시 정치권과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굵직한 사업을 전담했던 김수근씨와 그가 부사장으로 있었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도시계획 부장이었던 윤승증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1966년 어느날 시장, 부시장에게 신용을 갖고 있었던 김수근 선생에게 시장이 문제의 땅(세운상가 터)의 이용방법을 물어 왔을 때 즉석에서 보행자몰, 보행자데크, 입체도시 등의 개념을 설명하고 공감을 얻었다.(중략) 이 구상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필자에게 명해졌고 최초의 스케치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은 단 몇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윤승증 ‘건축’ 1994년 7월호 ‘세운상가이야기’, 손정목 ‘국토’ 1997년 6월호 ‘서울도시계획이야기14’> 이런 과정을 거쳐 처음 설계된 세운상가는 시대를 뛰어넘는 개념과 기술이 적용됐다. 건물과 건물을 2층이나 3층에서 연결하는 공중 보행 데크를 비롯해 5층에 인공대지를 설정해 공중정원을 만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높이 올라가면서 층을 계단식으로 후퇴하게 해 바람과 햇빛을 잘 들게 하는 구조를 적용하고 지상 1층을 자동차 전용 공간으로 할애한다 개념도 당시에는 ‘혁신’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대는 이를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구상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대부분 실현되지 못한다. 건설 과정에서는 최초 설계를 주도했던 서울시가 뒤로 빠지고 민간업체들이 사업을 전담했기 때문이다. 민간 사업자들은 도시 경관이나 첨단 건축 기술 보다는 분양과 임대 수익을 올려는 것이 목표였고 그러다 보니 최초 이상적인 설계는 무시됐다.
이에 대해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는 ‘서울 도시계획이야기, 아 세운상가여,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도시파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세운상가는 현대와 대림, 삼풍, 풍전, 신성, 진양 등 6개 기업과 아세아상가번영회, 청계상가(주)를 합쳐 8개 업차가 분할, 시공하기로 결정됐다.(중략) 1968년 들면서 대림, 청계, 삼풍, 풍전, 신성, 진양 등 상가아파트와 호텔이 하나씩 준공됐다.(중략) 이 건물군은 (도도한 기업 논리에 의해) 당초의 구상과 전혀 다른 매우 추악한 모습으로 실현된 것이다.” 결국 첨단 건축 기술의 전시장이 될 뻔한 세운상가는 각각의 주상복합이나 호텔로 건립됐다. 종로~퇴계로 사이에 현대상가(13층), 세운가동상가(8층), 청계상가(8층), 대림상가(12층), 삼풍(14층), 풍전호텔(10층), 신성상가(10층), 진양상가(17층)가 특징없는 모양으로 들어섰다. 총 연면적은 20만6025㎡, 최대 864세대가 거주하는 주상복합타운이 됐다. 세운상가가 건설될 무렵 언론들은 철근 7000t과 시멘트 87만부대 등 엄청난 자재를 사용해 만든 동양 최대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1966년 8월 세운상가 프로젝트의 첫 사업인 아세아번영회 기공식에서 김현옥 시장이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휘호를 써 ‘세운’이라는 이름을 붙었다. 하지만 최초의 이 주상복합타운은 나중에 볼품없는 외관으로 서울 도심의 경관을 헤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지목된다. 세운상가는 준공 이후 7~8년간 서울의 명소로, 또 영화배우와 정치인 등 거물급들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로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강남 아파트가 개발되고 도심에 롯데와 신세계 등 최신 백화점과 용산전자상가 등이 조성되면서 슬럼화되고 말았다.

1970년말부터 세운상가는 일반 의류와 정상 제품 외에도 각종 싸구려 모조품과 해적판 레코드, 도색 잡지 등을 파는 음침한 장소로 악명이 높았다. 이에 따라 도심을 살리기 위해 세운상가를 하루 빨리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랜 검토 끝에 서울시는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 조성을 위해 세운상가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세운재정비촉진사업의 하나인 세운녹지축 조성 작업에 근거해 2008년말 현대상가를 시작으로 8개 건물은 하나씩 해체될 운명에 놓여있다. 세운녹지축 건설 사업은 오는 2015년까지 계속된다. 이 사업이 끝나면 일제시대 소이탄 피해를 막는 소개지에서 전후(戰後) 빈민들의 불안한 삶의 터전으로, 그리고 경제개발시대를 대표하는 도심 랜드마크 건물이었던 세운상가와 그 일대는 서울 시민을 위한 녹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2009.6.29 매일 경제